지난 25일부터 30일까지 GM대우의 새로운 기함인 베리타스를 시승했다. 이로써 GM대우는 완벽히 새로워진 라세티 - 토스카 - 베리타스로 이어지는 소.중.대형 세단의 풀라인업이 이뤄진 셈이다. 새로워진 GM대우 풀라인업의 기함인 베리타스의 성능은 어떨까? 궁금해했던 많은 부분을 시승을 통해 풀어 본다.
외관
남성적인 유럽형 세단의 느낌으로 확 와닿는다. 전형적인 대형세단 이미지로 구형 벤츠의 보수적인 느낌도 나지만 옆으로 쭉 뻗어나온 오버휀더는 베리타스에 강하고 세련된 이미지를 불어넣어준다.
전면에 비해 후미 부분의 밋밋한 디자인은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다.
아직까지 'GM대우라고 하면 한단계 깔고보는' GM대우 디스카운트 현상 때문인지 베리타스에서는 GM대우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실제로도 베리타스는 GM대우의 작품이 아니다. 호주의 홀덴에서 제작.생산된 차량으로 '카프리스'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다. 엠블럼은 베리타스만을 위해 새롭게 제작되어 차량의 전면과 후면에 부착되어 있어, 운전자가 'GM대우'임을 밝히기 전까지 수입차량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제원상으로 에쿠스 리무진을 제외하고 국내차 중 가장 큰 크기지만, 실제 봤을 때 느껴지는 크기는 거대하거나 둔해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주차장에 주차할 때, '다른차보다는 길구나'하고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사이드 미러가 큰 몸체에 비해 비대칭적일만큼 작다. 마치 하마의 거대한 몸에 비해 작은 귀를 보는 느낌이랄까. 작은 사이드미러 때문에 보이지 않는 넓어진 사각지대를 걱정했지만 생각보다 시야확보가 잘 되는 편이다. 거울에 곡면을 넣은 것인지 일반차 이상의 시야 확보 능력을 보여준다.
인테리어
차량의 내부는 전체적으로 모두 큼직큼직 시원시원하다. 짐작컨데, 몸집이 큰 서양인들을 기준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시트 역시 굉장히 큼직하고 볼륨감까지 있다. 수납공간도 굉장히 뛰어난 편이어서, 운전석 우측에 마련된 수납함이나 글로브박스의 경우 여태껏 시승한 차중 가장 깊고 넓은 용량을 보여준다.
앞좌석도 꽤나 넓을 뿐더러 뒷좌석의 경우 비행기의 비지니스석이 연상될 만큼 넓은 공간이 확보되어 있다. 차가 이동중 중요한 휴식공간인 CEO나 관리간부 등에겐 정말 최적의 차가 아닐까 싶다. 단언컨데 넓은 공간만큼은 여태까지 타본 벤츠,BMW,아우디 등 각 프리미엄급 수입차의 롱바디 버전을 능가할 정도다. 가족이 있는 패밀리맨이라면 아이들이 뒷좌석의 '바닥'에 앉아서 소꿉놀이를 하는 장면이 연상될 수도 있겠다.
인테리어의 질감이나 버튼이나 레버, 핸들 등을 만졌을 때의 감성품질은 약간 부족하다. 뭔가 딱 떨어지는 질감이 아니라, 엉성하다던가 헐겁다는 기분이랄까. 정말 "2% 부족할 때"의 아쉬운 기분이 자꾸 드는 것이다.
일례로 손잡이나 버튼 등 사람이 손이 갈만한 부분에 야간 안내등이 준비되는 것은 필수조건은 아니다. 하지만 그 작은 부분에서 메이커의 세심한 배려를 통해 '고급 세단'임을 느낄 수 있고, 확인할 수 있다.
오디오나 TV, 차량 정보 시스템을 관리할 수 있는 인포테인먼트 시스템도 기본적인 구색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조작이 직관적이거나 체계적이지 않아 숙련을 필요로 한다. 도어창을 여닫을 수 있는 버튼도 도어쪽이 아닌 기어박스 후미 중앙에 준비되어 있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불편함을 가져다 준다.
차량에 간단히 시간을 확인 할 수 있는 시계가 없다는 점도 아쉽다. 물론 정말 원한다면 시간을 확인할 수는 있다. 하지만, 센터페시아 중앙의 LCD창을 통해 시간을 보기 위해서 몇가지 조작을 필요로 한다. 팔만 들어 볼 수 있는 손목시계를 원한 것인데,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찾아꺼내는 회중시계를 봐야하는 셈이다.
시승차량이 하위트림이어서 그랬을까. 눈부심방지를 위한 ECM룸미러 기능도 없다. 레버로 조작하는 수동 눈부심 거울 전부인데, 이것으로 조절을 하면, 후미 차량의 헤드라이트 뿐만 아니라 모든 배경들이 전체적으로 어두워져 안전운전에 문제가 생긴다.
눈치챈 분들도 있겠지만, 단점으로 지적한 대부분의 것들이 '운전자 중심'의 단점들이다. 베리타스의 실내는 운전자 중심으로는 분명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뒷좌석 탑승자 중심으로 넘어가보면 장점들이 눈에 띈다.
넓은 공간과 더불어 큼직큼직한 시트, 그리고 천장에 붙어 있는 7인치 대형 LCD화면은 대표적인 케이스다. 물론 다른 메이커의 대표적 기함들의 대부분에도 LCD화면이 준비되어 있긴 하다.
하지만, 베리타스만의 장점이 눈에 띤다. 7인치 대형화면을 통해 DVD,TV,라디오 등을 감상할 수 있는데, 이를 컨트롤 할 수 있는 패널이 후방에도 장착되어 있다. 'DVD CD를 다른 것으로 갈아달라, 볼륨 좀 줄여달라, 채널 좀 바꿔달라' 등등의 요구조건을 일일이 앞좌석 승객에게 부탁하거나 조그만 리모콘을 센터페시아를 향해 만지작거릴 필요도 없다. 상위트림에는 뒷좌석에 안마기능이나 시트조정기능까지 추가된다고 하니, 그야말로 달리는 아방궁 수준이다.
성능
GM대우가 베리타스 출시 때, 뒷좌석을 위한 '쇼퍼드리븐'뿐 아니라 운전자 중심의 '오너드리븐'용 스포츠세단임을 표방한다고 했다. 넓은 실내와 더불어, 스포츠 드라이빙까지 즐길 수 있다면, 꿩먹고 알먹고 금상첨화 아니겠는가?
베리타스 시승 직전의 2주동안 아우디의 A6 3.2 가솔린과 3.0 디젤을 시승을 막 마친 상태였다. 그래서 였을까? 기대했던 것보다 차가 굉장히 굼떴다. 물론 기본적으로 차를 출력이 부족하다던가하는 문제는 아니다. 뭔가 억제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엔진 소음도 뭔가 걸린 듯한, 칼칼한 사람으로 치자면 허스키보이스의 엔진음이 난다. 3.6리터의 대형엔진임에도 힘이 넘치거나, 파워풀하다던가 튀어나간다거나하는 느낌은 가지기 힘들다.
브레이크도 스포츠세단에 꼭 필요한 민감한 세팅이 아니다. 풀브레이킹 시에도 칼같이 꽂히는 즉각적인 반응보다는, 짧은 순간이지만 한타임 부드러운 브레이킹 이후에 풀브레이킹이 이뤄진다. 몸이 젖혀지지 않는 말그대로 서는듯 마는듯 실크처럼 부드러운 브레이킹을 하기엔 좋지만, 분명 스포츠세단에 어울리는 세팅은 아니다. 브레이킹만 봐도 '쇼퍼 드리븐'용 차량임이 드러나는 셈이다.
'스포츠 세단'으로써의 기대을 벗어버리면, 베리타스는 분명히 매력적인 성능을 보여준다.
후륜 구동이라는 뒷바퀴 굴림 방식은 운전자에게나 뒷좌석의 승객에게 전륜에 비해 보다 나은 승차감을 제공한다. 특히나 굽이치는 커브길에서 그 진가가 더욱 발휘되는데, 전륜구동에 비해 몸의 쏠림이 덜하다.국내에 출시된 대형세단 오피러스,에쿠스에서는 느낄 수 없는 뛰어난 승차감이다.
이는 후륜구동의 운동 특성 때문인데, 전륜구동이 차량 전면부를 축으로 몸이 내동댕이 치는 느낌이 드는 반면, 후륜구동의 경우 뒷좌석을 축으로 움직이기때문에 쏠림이 덜하기 마련이다.
핸들링도 탁월하다. 전체적으로 묵직한 느낌을 주는 핸들은 후륜 구동과 찰떡궁합을 이루며 날카로운 핸들링, 운전자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칼같은 움직임을 선사한다. 완벽한 스포츠 세단은 아니지만, 그만큼 운전을 재밌게 즐길 수 있다.
서스펜션은 부드러우면서 단단하다. 국내차의 물침대 수준의 푹신함도 그렇다고 독일차의 단단함도 아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요철의 충격이 전달될 때, 국내차의 물렁한 서스펜션이 대부분 그러하듯 요철에서 오는 충격을 1차적으로 출렁임.푹신함으로 모두 커버한다. 하지만, 이러한 출렁임이 계속이어지지 않는다. 이후 이어져야 할 것 같은 출렁거림의 잔파도는 꽉 잡아주며 단단히 단속한다.
연비는 가히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리터당 10리터를 기록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우디의 3.2리터 엔진이 리터당 7~8km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3600cc엔진이라곤 믿기지 않을 놀라운 연비다.
총평
오너와 쇼퍼, 안정감과 스포티함의 두 가지 경계 사이에서 베리타스는 분명 쇼퍼드리븐쪽에 가까운 후륜 대형 세단이다. 다만, 보너스로 날카로운 핸들링까지 얻었다고 할까.
경쟁차종으로는 제네시스와 성격이 다르다. 국내차 중에서는 체어맨W나 오피러스,에쿠스,SM7 정도가, 수입차 중에서는 크라이슬러 300C가 좋은 경쟁상대가 될 것이다.
완벽한 고급스러움으로 치장하기보다 가격과 실용적인 성능으로 무장한 후륜구동 베리타스의 선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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